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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Ⅰ. Ⅱ
 Bandi    | 2016·06·04 15:04 | HIT : 633 | VOTE : 69 |

제  목 : 발언Ⅰ. Ⅱ
지은이 ; 김종철
펴낸곳 : 녹색평론사

격월간《녹색평론》발행ㆍ편집인인 저자 김종철이 〈경향신문〉,〈시사IN〉,〈한겨레〉에 발표했던 글들을 엮어 펴낸 책으로 저자는 “발언 한다는 것이 지식인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자 운명이라고 한다면, 지금 이 사회 속에서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마련해준 정신적, 물리적 토대 덕분에 어떻든 그럭저럭 지식인 행세를 하고 있는 나는 무엇에 관해서 어떻게 발언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발언은 무슨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발언Ⅰ
22쪽
지금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제성장’을 넘은 세상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지배하고 있는 거짓언어, 타성적인 언어습관, 상투적인 사고의 틀을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28쪽
나는 촛불집회 첫날 서울 청계광장에 나갔다가 완전히 즉흥적인 발상과 즉석 구호로 정부와 사이비 언론을 열렬히 비판하면서, 그 누구의 지휘도 없이 극히 자연스럽게 한마음이 된 촛불이 밤의 어둠 속에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율동적인 춤을 만들어내는 장면 앞에서 경악했다.
.....
아, 돈과 권력 욕망에 눈이 멀어 미쳐 돌아가는 이 시대에도 아직 죽지 않은 인간정신이 있었구나. 돈이 된다면, ‘경제’를 살린다고만 하면 어떤 거짓과 어떤 불의도 허용하면서 혼자만의 도생에 골몰하는 이 엉터리 세상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정신이 이 사회에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더욱이 10대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이 이 살아있는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는 게 너무나 신선하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52쪽
   윤중호가 쓴 <일산에서>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일산시민모임에서 땅을 빌려 만들었다는 주말 텃밭
  쇠비름만 자라는 다서 평짜리 박토지만
  이름은 어엿한 주말농장
  글쎄 그런 걸해도 괜찮을까?
  무공해 채소가 어떠니, 흙을 밟는 마음이 어떠니,
  이런 막돼먹은 생각을 해도 괜찮을까?”
오늘날 우리들은 주말농장이니, 농촌관광이니, 유기농이니 하면서 어설픈 농사 흉내를 내면서 도시생활의 불모성과 삭막함을 잠시나마 벗어나보려고 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실 가소롭고 건방진 작태인지 모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산업화 경제발전이라는 이름 밑에서 끊임없이 모역과 천대를 당해온 우리들의 고향, 즉 농촌과 농민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말농장’ 운운하는 게 얼마나 염치없는 짓인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95쪽
마음이 몹시 아프다. 밥도 못 먹고, 자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기는 선물로 받은 시계를 검찰수사가 시작될 때 논두렁에 버렸다는 참으로 치욕스러운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 저 모욕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무리 꺾어버리고 싶은 정적이라도 그렇지 현직의 권력자가 자신의 전임자에게 이런 모질고 야만적인 공격을 해댄다는 게 과연 21세기의 소위 ‘문명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114쪽
민주주의는 복잡한 이론이나 설명이 필요한 게 아니다. 민주주의는 모든 개인이 예외 없이 갖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욕구, 즉 노예나 신민이 아니라 자유인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존중하는 정치제도이다.

137쪽
이제는 한국에도 꽤 알려졌지만, 브라질에 쿠리치바라는 도시가 있다. 원래 그다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아니었던 인구 300만 명의 이 도시는 지난 수십 년간 철저히 친환경적 도시계획을 실천해왔다. 그 결과 유엔을 비롯한 많은 국제기관과 전문가들에 의해 모범적인 녹색도시로 주목을 받아왔다.
현재 이 도시에는 수많은 공원과 숲이 조성되어 있다. 1인당 녹지 면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시민들은 대부분 평생 여기서 살기를 원하고, 관광객들은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다.
오늘날 쿠리치바를 언급할 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도시 전역을 극히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는 버스 중심 교통망이다. 쿠리치바의 도시계획가들은 현대의 대도시들이 가장 쉽게 걸려드는 유혹, 즉 지하철 중심 대중교통망 건설을 단호히 거부했다. 그 대신 그들은 기존의 도로를 정비하여, 버스의 대형화 및 정거장의 독특한 설계를 통해서 환경파괴와 막대한 재정지출을 강요하는 지하철 없이도 매우 쾌적하고 효율적인 대중교통체계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리하여 쿠리치바는 일상적인 대중교통 이용률이 80퍼센트가 넘고 대기오염도가 가장 낮은 도시가 되었다.

146쪽
지난 봄 ‘4대강 살리기라는 거짓 이름으로 멀쩡한 강을 죽이고 있는 현장에 다녀온 뒤 시인 신경림 선생은 어느 모임에서 “지금 이 공사를 추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막지 못하는 사람들도 천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을 술회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강이 참혹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자신의 절망적인 기분을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177쪽
원전의 장래를 예측하는 데는 정상적인 사고력이면 충분하다. 원전사고는 반드시 일어난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냐 하는 것뿐이다. 대안이 없다는 구실로 원전 가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자연과 미래세대에 대한 테러이다.

227~228쪽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220쪽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보를 전부 폭파하고 강을 원상태로 돌리면 됩니다.”
“얼마 전에 완공했는데 폭파하려 하겠습니까? 22조원이나 들인걸요”
“이제 시작입니다. 4대강에 만들어놓은 보들은 그냥 놔두면 그 후유증 때문에 돈이 계속 들어갈 겁니다. 수질 악화, 퇴적 역행침식, 홍수 증가가 나타날 것이고, 앞으로 한국 국민의 출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4대강 사업의 후속 비용을 지속적으로 부담할 경제력을 가진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 없습니다. 독일의 경제력으로도 어림없습니다. 보를 폭파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값싸고 효과적입니다. 22조원이 소모된 지금 없애는 것이 앞으로 후속 비용을 더 많이 들이고 없애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지요.”

이것은 지금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어떤 한국인과 독일의 저면한 하천관리 전문가(칼스루에 공대 베른하르트 교수) 사이에 최근 있었던 대화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237~238쪽
보통 원자력의 대안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말하지만, 나는 원자력에 대한 진짜 대안은 ‘유기농’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해야만 원자력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간파할 수 있고, 핵 없는 세상을 올바르게 상상할 수 있다. 원자력의 대안이 재생가능에너지라고 말하면, 단지 전력생산 방식이 바뀌면 된다는 차원에서 생각이 머물기 쉽다. 그리고 재생가능에너지라면 전기를 얼마든지 풍요롭게 써도 괜찮다는 얘기가 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에너지를 풍부히 쓰는 게 과연 좋은 삶인지 깊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자력에는 허다한 문제가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차별을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약자들의 희생 없이는 한순간도 버틸 수 없는 대표적인 시스템이 원자력체제인 것이다. 가령 위험구역 내에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장 노동자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원전은 끊임없이 손질이 필요한 기계시설이기 때문에 늘 누군가가 피폭을 각오하고 들어가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위험하고 힘겨운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극빈층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불안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원전 인근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중대사고가 없어도 원전에서는 평소에도 저선량 방사선이 끊임없이 누출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결국 토양도 물도 오염되고, 내부피폭에 의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약자를 희생시키지 않고,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식을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 체제로의 전환도 그것이 좀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51쪽
자본가들은 항상 자신들의 이익은 철저히 사유화하고, 손실은 국가라는 수단을 이용해 철저히 사회화하는 데 익숙해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뿌리깊은 생리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시스템은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치의 문제이며,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세계의 약자들은 탐욕스러운 투기꾼들이 입은 손해를 메워주기 위해서 피땀을 흘려야 하는 부조리한 운명을 언제까지나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발언Ⅱ
100~102쪽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는 정의가, 마치 뱀처럼, 오직 맨발인 사람들만 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기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주받고 공격받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했고, 그 때문에 총을 맞고 죽었다.” 이것은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최근에 쓴 에세이에서 한 말이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고, 진실이 핍박을 당하고, 거짓이 활개를 치며, 거의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오늘의 이 뒤틀린 세계를 이보다 더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갈레아노의 이 말이 군사독재하에 신음하고 있던 어떤 특정 사회상황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우리는 적반하장이라는 말로써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사태가 끊임없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매일매일 기막힌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기관, 그것도 막강한 특권이 주어진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드러났음에도, 지금 이 사회는 민주주의의 존망에 관계되는 이 위헌적 범죄행위를 어떻게 처리할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물론 근본적인 책임은 온갖 거짓말과 저열한 술수를 쓰면서 이 사태를 그냥 뭉개고 지나가려는 집권세력과 어용언론, 어용지식인들에게 있음이 분명하지만. 또한 야댱의 책임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
그런데도 이른바 ‘대중과의 소통’을 꾀한답시고, 야당 의원들은 종편 텔레비전의 너절한 오락프로그램에 여당 의원들과 나란히 출연하여 질 낮은 우스개와 잡담을 늘어놓는 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

132~133쪽
이번에도 그들의 자질은 유감없이 노출되었다. 예를 들어, 대통령은 구조작업이 시작된 초기에 현장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발언으로 많은 시민들의 빈축을 샀고, 어떤 고위 관리는 절망과 비통에 빠져 있는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상급자를 위한 ‘기념사진 촬영’을 운위하는 몰상식을 드러냈다. 가장 어이없는 것은 그곳을 방문한 한 국무위원이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무심히 라면을 먹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나라의 교육과 윤리와 도덕에 관계하는 주무 관청, 즉 교육부의 수장이 보여준 처심이었다. 더욱이 이 몰상식한 행태를 변호한답시고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이가 “계란도 안 들어간 라면” 운운했을 때, 그것은 현재 이 나라 상증부 권력자들의 정신상태가 어떠한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발언이었다.

137쪽
.............‘국가개조’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지금 대통령이 해서는 절대로 안될 말이다. 왜냐하면 이 나라 공직 사회의 모든 비리와 부조리의 책임이 궁극적으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통령 중심제 국가라고 하지만, 왕조시대의 제왕보다 더 심한 독선적인 통치 방식으로 일관해오다가 이제 와서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적폐’를 운위하고 ‘국가개조’를 말한다는 것은 삼류 코미디보다 못한 언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44~145쪽
............간단히 말하면, 세월호 참사란 그동안 끊임없이 거짓과 위선과 속임수로 일관해온 이 나라 지배층의 본질이 백일하에 노출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암함 침몰사건 때에도 그들은 석연치 않은 증거를 근거로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 하리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을 정당한 설명 없이 무조건 탄압해왔다. 만약에 그들의 주장대로 ‘폭침’이 사실이라면 숨진 수병들은 심한 타박상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지휘관들과 장교들은 엄한 처벌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수병들의 사인은 익사였고, 장교들은 문책을 당하기는커녕 오히려 승진을 했다. 이 나라 지배층이 국민 정부를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들은 의문을 품거나 표시하는 시민들을 ‘종북’이니 뭐니 하는 천하고 더러운 용어로 비방, 매도하면서 ‘비국민’으로 몰아세웠다.
소위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평생 돈이라는 ‘맘몬’을 섬기는 것 외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지 알 수 없어 보이는 인물이 권력을 잡자마자 벌인 사업이 이 나라의 k장 소중한 자연자산이자 세계에서도 드문 생태적 보고인 4대강을 깡그리 부수고 거기에 콘크리트를 무지하게 퍼붓는 일이었다.
............
그리하여 지금 우리의 아름다운 강과 그 유역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대형 댐들에 가로막힌 거대한 수로, 그것도 더러운 물과 악취가 풍기는 황막한 수로로 변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뀌었으면(누가 집권하더라도) 응당 이 전례 없는 국토 유린행위에 대한 엄격한 책인 추궁이 있어야 할 것임에도, 현 집권세력도 야당도 이 문제에 대해 말이 없다.

228쪽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필이면 세월호 1주기 날,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생각을 했을까. 사사로운 개인의 일정도 아닌데 해외순방 계획을 어떻게 짰기에 이다지도 사려 깊지 못할까.
.......................
취임 이후 우리는 최고 권력자의 ‘소통능력’ 결여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민을 대하는 자세 변화를 아무리 촉구하고 간청해본들, 애초에 국민에 대한 존경심은커녕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도 분별력도 없는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지금 이 나라 통치세력은 여하한 건강한 질책과 비판도 받을 자격이 없는 허망한 존재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
정치상황이 절망적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좌절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정치의 쇄신을 통해서 우리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의 쇄신이란 어떤 신비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252쪽
“미친놈들이 국회의원 늘리자고 하네요. 우리나라 국회의원 연봉이 얼만지 아세요?” “얼만데요?” “1억 5천이 넘어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거기다가 온갖 특혜를 누리고, 사무실에는 보좌관, 비서, 인턴 포함해서 9명이나 직원들 두고 있고요. 그 경비만도 연간 6억이나 듭니다. 세금 도둑놈들이에요. 국회의원이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나라도 많다는데....”
모처럼 택시를 탔다가 다혈질의 운전사로부터 뜻밖의 ‘가르침’을 받고, 인터넷에서 확인을 해보니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받는 급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도 사실이었다. 액수 자체는 우리보다 많은 나라들이 더러 있지만. 국민소득 대비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단연 최고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세비 외에 지급되는 각종 수당들도 참 가지가지이다. 그중 압권은 ‘간식비’라는 것이다. 의원들이 보좌진과 함께 밤새워 일할 때 간식이 필요하다면 자기들 주머니를 털어 사 먹을 일이지, 왜 공금을 써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71쪽
..............세상 꼴이 하도 기막혀서, 미치지 않으려면 세속과 인연을 끊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이승을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 -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뜻밖에도 프란치스코 교황, 버니 샌더스, 제레미 코빈이라는 세계변혁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말하는 ‘지도자’들이 잇따라 출현하여 지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재작년 취임 직후 발표한 <복음의 기쁨>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임을 천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과 금융투기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새로운 독재’ 때문에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다수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이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호소했다. 그 교황이 최근에는 현재 인류사회의 가장 긴급한 문제인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회칙>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회칙>의 특징은 기후변화에 대해 그냥 원론적인 염려의 말씀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근복적 원인을 명쾌하게 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글로벌 자본주의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교황은 현재의 경제체제가 구조적으로 빈부격차를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근저에 있는 ‘성장’논리가 환경위기와 기후변화를 초래한 결정적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교황에 따르면, 오늘날 세계경제는 “이 지구에서 무한한 상품 공급이 가능하다는 ‘거짓말’ 위에 기초해 있고, 이 때문에 우리의 행성이 말라가고 있다.”
....................
............................
미국 민주당 차기 대통령 예비후보로 등장한 버니 샌더스나 영국 노동당이 새 리더로 선출된 제러미 코빈은 40년 이상의 오랜 정치 경력자들이다. 그들은 1980년대 초 영국의 대처,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이 세계를 압도함에 따라 극심한 불평등, 인권유린, 야만적인 전쟁, 민주주의의 파괴, 자연환경의 황폐화가 확산. 심화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하고, 외롭게 저항해왔다.
그들은 초지인관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사회정의의 실현, 약자와 생명과 자연을 보호하는 게 정치의 본분이라는 신념을 충실히 지켜왔다. 당연히 그들의 정치 행로는 부도독한 시스템에 투항해버린 대다수 ‘야당’ 정치가들의 기회주의적 행태와는 근본적으로 화해할 수 없었고, 따라서 오랜 세월 고립된 채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
따져보면, 교황이나 샌더스, 혹은 코빈의 메시지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그것은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경제는 사회적 공통자본을 고르게 나누는 일이어야 하고, 정치란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상식’의 확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죽어 있던 그 상식이 이제 세계의 ‘중심부’에서 어쨌든 강력한 발언력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발언이 왜 하필 연로한 지도자들을 통해서 부활했을까? 아마도 그들이야말로 오랫동안의 체험을 통해 이 세상의 비참과 고통은 어떤 불가항력의 논리가 아니라 실은 기득권자들의 탐욕과 자의적인 결정이 ‘만들어낸’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잘 싸워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가이다.

  
  기적이 일어나기 2초 전  Bandi 16·07·03 675
  바다마을 다이어리  Bandi 16·01·26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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